- 글로벌 환경규제, ‘스마트팩토리 사업’ 확장으로 대응 가능
[글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 안광현 단장] TV가 잘 보급되지 않았던 어린 시절, 시골 우리 동네 반장님집에는 어린이 프로그램이 할 시간이면 동네 고만고만한 녀석들이 집 마당에 한가득 모여든다. 마당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넓직한 미닫이 유리문을 열면 마루가 있고 그 끝에 맞닿아있는 안방문까지 열어놓으면 마당에서도 TV를 볼 수 있다.
EU는 탄소중립 관련 다각도의 법과 제도를 발표하고 시행중에 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공급망 ESG실사’ ‘핵심원자재법(CRMA Critical Raw Materials Act, 미국)’ ‘디지털제품여권(DPP Digital product passport)등이 대표적인데, 이외에도 많은 규정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시행되거나 준비되고 있다. [사진=gettyimage] |
칼럼 제목으로 단 ‘양의 탈을 쓴 이리’는 당시 손에 땀을 쥐고 봤던 인형극이다. 토끼가 말한다 “양아 너는 다른 양하고 약간 틀린데 어느 나라에서 왔니?” 양이 말한다. “어 나는 저기 구라파에서 온 양인데, 내 이름은 이리라고 해”, 이리라고 불리우는 양은 입에서 침이 흘러내리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자기를 소개하고 있다.
“츄르릅!” 이리 양은 흐르는 침을 집어삼키면서 계속 이야기한다. “내가 아주 맛있는 풀이 있는 곳을 알고 있는데 같이 가볼래?”
이때쯤 마당에서 초조하게 보고 있던 아이들은 “안돼! 가지마!, 양의 탈을 쓴 이리야!”, “그곳에 가면 이리가 너를 잡아 먹는단 말이야!” 이 인형극의 끝은 어떻게 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양의 탈을 쓴 이리’는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탄소중립’에 대한 글로벌 이슈가 커지고 있다. 지구를 살리기 위한 계몽 수준의 움직임이 각국 마다 펼쳐지고 있다. 다양한 영역에서 탄소중립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중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는 영역이 바로 ‘제조업 탄소중립’이다.
쉽게 말해 ‘제조업’에서 탄소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EU는 탄소중립 관련 다각도의 법과 제도를 발표하고 시행중에 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공급망 ESG실사’ ‘핵심원자재법(CRMA Critical Raw Materials Act, 미국)’ ‘디지털제품여권(DPP Digital product passport)등이 대표적인데, 이외에도 많은 규정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시행되거나 준비되고 있다.
방향은 제조과정 및 원재료에서 탄소량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EU 내로 수입할 때 ‘탄소세’를 부과한다. 제조업 수출이 많은 우리나라, 게다가 대응에 뒤쳐질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의 경우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마치 ‘양의 탈을 쓴 이리’ 같다. 우리는 이러한 환경규제가 지구를 살리고 후손에게 아름다운 환경을 약속하는 매우 그럴듯한 가치에 기반한다고 들어왔지만, 사실은 유럽 및 선진국가들의 무역장벽의 일환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양’은 환경보호, 지구보존이라는 탈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자국의 제조업을 보호하기 위한 무역장벽이라는 ‘이리’임에 틀림없다.
첫 번째 양의 탈을 쓴 이리, CBAM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는 가장 강력한 탄소규제 정책이다. 2023년 10월 1일, EU는 EU 역내로 수입되는 철강 등 6개 품목의 탄소 배출량 보고 의무화를 추진하기로 했으며, 2025년 말까지 시범기간을 두고, 202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역외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대해서 탄소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수출기업은 생산과정에서 발생되는 탄소 배출량을 산출해 EU에 분기별로 보고하고, 보고 의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 톤당 10∼50유로의 벌금이 부과된다. 당장에 한국에서 유럽으로 수출되는 철강, 알루미늄 업체들은 이를 대비해야 한다.
준비하지 못한 기업의 제품들은 수출시 탄소세가 부과되어 현지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되며, EU의 수입업자로부터 외면을 당하게 될 것이다. EU가 CBAM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진정한 의도를 말하고 싶다.
우선 EU는 CBAM을 본격 실행하기에 앞서 그동안 역내에 제공하던 탄소배출권거래권(ETS, Emission Trading Scheme) 무상할당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한다. 역내의 탄소량 감축이 어느 정도 되었다고 판단한 것이고, 본격적으로 눈을 돌려 해외에서 들어오는 제품에 대한 무역장벽을 강화하는 태도를 취한 것이다.
자국의 기반을 탄탄히 갖추어 놓고 수입제품에 대한 상대 관세의 명목으로 탄소량 감축, 즉 CBAM을 부과함으로써 자국 산업을 보호할 뿐 아니라 해외 우수한 제조 기업들이 아예 유럽에 공장을 짓고 제품을 생산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그 동안 유럽의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아시아, 아프리카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겨 왔었는데(Offshoring), 그러다보니 정작 유럽의 제조산업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었다. 이를 다시 돌아오게 하는 ‘제조업의 본국회귀’(Reshoring)까지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싶다.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 안광현 단장은 CBAM과 같은 글로벌 환경규제를 ‘스마트팩토리 사업’의 확장 개념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진=gettyimage] |
CBAM, 유럽 내 생산활동 활성화가 목적
탄소배출권거래(ETS)를 하고 있는 국가들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유럽연합, 미국, 중국, 일본 등 많은 국가에서 자국의 탄소배출 저감을 위해 현재 실행되고 있다. 유럽은 역내 탄소배출권의 거래를 위해 EU연합에서 ‘크레딧’이라는 현금 대용수단을 탄소를 저감한 기업에게 무상으로 할당해주고 탄소를 많이 발생시키는 기업이 그 크래딧을 구매하게 했다.
이를 위한 거래시스템이 ETS다. 한국은 K-ETS라고 명명하고 한국거래소(KRX)에서 경매하거나 무상할당을 해주고 있다. 타국가도 형식은 약간 다르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탄소배출권이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EU는 역내 무상할당을 폐지하고 탄소권거래를 기존에 ‘크래딧’으로부터, CBAM 탄소세를 거래 재원으로 활용하게 된다. 자국의 ETS를 넘어 수입품을 상대로 하는 CBAM이 되는 것이다.
얼핏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이유가 유럽 역내는 이미 많은 기업에서 탄소저감이 이루어져 있고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아니다. 역외기업으로부터 들어오는 수입품에 대해 경쟁력을 약화시켜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의미일 테고, 또 하나는 유럽과 비즈니스를 하고자 하는 기업들은 유럽내에서 생산활동이 이루어지도록 투자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유럽의 제조산업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다시 재산업화의 중심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책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2023년 5월 16일 발효한 CBAM 규정의 적용대상 품목은 시멘트, 전력, 비료, 철강, 알루미늄, 수소로 총 여섯 가지 산업이다. 2026년 1월 1일부터 EU의 적용제품 수입업자는 CBAM 등록부(CBAM registry)를 통해 관할당국에 직전 연도에 대한 신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내재배출량에 대한 인증서(CBAM certificates)를 제출해야 한다.
불공정하다고 간주되는 역외 수출 보조금을 상쇄하기 위해 상계관세를 부과하듯이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수출국의 느슨한 기후 정책으로 인해 사실상 무역 보조를 받는 수출품으로 인한 무역 왜곡을 바로잡으려는 목적을 첫 번째 의의로 내세우고 있다.
CBAM 적용대상 품목이 향후에 정유, 석유화학, 플라스틱으로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전환기간이 끝나면 내재배출량이 공인된 검증기관에 의해 검증될 것을 보장하는 의무도 추가된다. CBAM 적용제품을 EU로 수출하고자 하는 기업에게 CBAM 집행위는 수출업자들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내재배출량에 대한 모니터링 방법 및 데이터 집계 시스템을 개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를 일컬어 MRV라고 하며 모니터링 의무, 보고의무, 검증의무(MRV Monitering, Reporting, Verification)가 그것이다. 탄소세 부과에 더해 추가로 기업에 부과된 것이다.
스마트팩토리가 답!
그러면 한국의 중소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나는 한국의 중소기업에게 이러한 규제는 위기이자 기회라고 생각한다. 위기가 생각지도 않았던 환경규제를 대응해야 하는 것이라면, 기회는 한국의 중소제조업 경쟁력이 글로벌 시장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기요인을 없애기 위한 방법의 첫걸음은 인식의 개선이다.
그동안 전혀 생각지도 못한 환경에 대한 이슈가 이제는 꼭 필요하다는 중소제조업 대표들의 인식이 있어야만 한다. ‘그냥 어떻게 되겠지?’ 하다간 집도 절도 잃어버리는 형국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질문이 나올텐데. 나는 의외로 간단한 데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스마트팩토리’이다.
스마트팩토리가 무엇인가! 제조현장을 디지털화해 앞서 언급한 제조데이터를 통해 생산 효율성과 더 나아가 AI를 통한 자율제조의 영역까지 포함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한국의 스마트제조혁신을 정부의 정책으로 시작했고, 당시 중소제조업에서는 스마트팩토리라는 개념도 생소해 초기에는 거의 ‘계몽’의 수준으로 정부가 끌고 가는 형국이었다.
그 결과 지금은 스마트팩토리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게 되었고, 현재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스마트제조 지원사업‘에 중소기업의 신청 경쟁율이 5:1을 육박하고 있다.
정부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스케일업해 ‘고도화’를 중점 전략으로 하는 ‘스마트제조혁신 2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나는 CBAM과 같은 글로벌 환경규제를 ‘스마트팩토리 사업’의 확장 개념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스마트팩토리 고도화 단계의 중소기업은 CBAM, DPP를 대응하기 위한 제조데이터 수집이 가능한 기업이다. EU에서는 원칙적으로 환경대응을 하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이 앞서 언급했지만 MRV(Monitering, Reporting, Verification) 즉 모니터링의무, 보고의무, 검증의무다. 한 마디로 디지털 대응방식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스마트팩토리 고도화 구축 기업은 모든 제조데이터, 장비 및 주변 환경 데이터까지 생산에 관여되는 데이터가 저장되고 있다. 여기 저장된 제조데이터를 활용해 AI 알고리즘을 통해 장비의 예지보전 및 품질확인, 공정간의 연결, 자율생산까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CBAM 관련 국내 중소기업 EU 수출현황 [자료=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 |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고도화 기업은 모든 제조과정에서 발생되는 유의미한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그러면 탄소량 측정을 위한 데이터는 ISO14067에 따라 CFP(탄소발자국)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하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생산량, 원재료, 가동시간, 전력사용량 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깜짝 놀랄만한 사실은 스마트팩토리 고도화 기업에서는 이미 이러한 데이터가 실시간 수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탄소량 측정 즉, CFP 결과값의 상당 부분은 지금이라도 대응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다만 원재료의 화학 성분에 따른 탄소량 산출 등이 추가돼야 하는데, 이러한 특정한 센서나 계산식을 더해서 스마트팩토리를 구축한다면 훌륭한 대응이 가능하다.
현재 스마트팩토리는 기초, 중간1, 중간2, 고도화 4단계로 구분돼 기업에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5단계로 ‘환경대응단계’를 추가로 해 기존 4단계에서 5단계로 확대하면 정부 차원의 대응준비는 완성된다. 이것은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이 될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동안 성공적으로 운영해온 스마트제조혁신의 경험치가 있기에 충분히 가능케하는 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MRV가 갖고 있는 또 다른 의미는 개별 기업별로 제각각 환경규제 대응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표준화해 누구나 알수 있고 상대평가가 가능한 형태로 대응하라는 것인데 그것이 R(보고의무), V(검증의무)이다.
보고(R)시 정의된 형식과 내용으로 해야 하며, 검증(V)은 공인된 기관에서 해야만 한다. 이 부분은 ‘플랫폼’을 활용해 대응을 하라는 의미로 읽혀진다. 탄소량 측정을 위한 센서 등을 추가로 설치해 데이터화하고, 이를 정해진 보고서 양식에 맞추어 작성, 검증까지 서비스 해주는 ‘플랫폼’ 사업 말이다.
이런 플랫폼은 민간에서 활발하게 개발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약 10개 정도의 ICT회사에서 환경대응 플랫폼을 개발해 상용화 서비스 단계로 가고 있는 중이다. 중소벤처기업부도 발빠르게 지난 2023년에 ‘중소기업의 환경규제 대응을 위한 종합솔루션’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성공적으로 서비스용 플랫폼이 개발되었고 지난 4월부터 상용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이 플랫폼을 구독만 하면 환경규제 리포트를 ‘클릭 클릭’으로 생성해주고, 전문인증사로부터 인증까지 원스톱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 바야흐로 구독 SaaS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스마트팩토리 사업도 개별공장 안에 각각 서버 및 솔루션이 설치되는 On-Premise 형태에서 구독 SaaS 형태로 발전되기를 희망한다.
여기까지 첫 번째 양의 탈을쓴 이리 CBAM을 마치려고 한다. 여러 곳에서 이 내용으로 발표를 하고 있지만 글로 표현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편에서는 DPP(디지털 제품여권 제도, Digital Product Passport)를 다룰 예정이다.
최종윤 기자 news@industrynews.co.kr